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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기러기떼의 울음소리가 깨며 파문을 일구었다. ㅅ자를 옆으로 누인 대형을 이루며기러기떼가 동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다지 높게 뜨지 않은 것으로 보아 철교쯤의 갈숲에서 날아오른 모양이었다. 어느 사냥꾼의 위험스런 그물을 피해 새벽잠을 팽개친 피난길인지도 모른다. 기러기가 날고 있는 방향으로는 바다가 넓어지고 갈대숲도 한결 깊었다. 기러기떼는 유리알처럼 맑고 투명한 음향의 울음을 허허한 공간에 쉼없이 뿌리며 지혜롭게 느껴지는 대오를 정연하게 지어 날아가고 있었다. 갈숲이 희디흰 꽃더미로 나부끼고, 그 속에 기러기며 또 다른 철새가 깃들이면 어느덧 가을은 깊어져 있었다. 그때쯤이면 방죽을 따라 질펀하게 펼쳐진 들녘도 황금의 옷을 빼앗기고 황랑하게 변하게 마련이었다. 정하섭은 약간 오르막진 산굽이 길을 민첩하게 걸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