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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윤은 람찻이 위쉐가 이번 비극의 배후인물이라고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지금까지의 말도 위쉐가 배후인물임을 가정하고 한 것이었다. 이렇게 되자 기윤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쁜 짓은 조금도 못할 만큼 선량한 외모를 가졌지만 방금 전 형의 죽음과 가족의 비극을 전해들은 그의 반응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말해. 어째서 형님을 충동질 한 것이냐?” 람찻이 보기 드물게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오랜 친구의 화난 모습을 오랜만에 본 위쉐은 그제야 짧게 웃음을 날리며 표정에 변화를 주었다. “역시 자네군. 어떻게 알아냈나?” “말 돌리지 말게.” “이유는 간단해. 시험한 거야.” “위쉐!” “이그라임 황자를 따르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의심 따윈 해서는 안 돼. 아니, 인간으로써 어찌 의구심을 들지 않겠나. 그렇다면 티를 내지 말아야 하지. 형님은 둘 다 못했어. 내가 형님을 충동질 했다고? 난 그의 마음속에 있는 의심을 구체화 시켰을 뿐이네. 형님은 정확한 정보를 모아 의심을 불식시킬 생각도 않았어. 오히려 편협한 생각에 사로잡혀 스스로 자멸한 걸세. 그런 형님이 가주가 되었다간 가문을 말아먹는 것은 시간문제이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위쉐의 말에 기윤은 오싹함을 느꼈다. 형님에 대한 일말의 정도 느낄 수 없는 싸늘한 평이었다. 람찻은 위쉐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한 가문의 가주가 충성을 맹세한 주군을 믿지 못하고 흔들린다면 가문의 몰락은 자명한 일이었다. 하지만 방법을 찬성할 수 없었다. 만약 자신 첫째 형님이 이그라임 황자에 대한 불신을 가지고 있다면 다른 방법으로 첫째 형을 설득했을 것이다. “네 방법은 너무 극단적이야. 아무래도 난 납득할 수 없네.” “그대에게 납득을 바라는 일이 아니니까 상관없어.” “위쉐. 자네 어찌 그런 말을 하는가.” “그대야 어차피 내가 무엇 짓을 하든 상관치 않겠노라 선언하지 않았나?” “그건,” “확신을 확인시켜주었으니 충분하지 않나. 이만 돌아가게. 더 이상 할 말은 없으니.” 차가운 축객령이었다. 람찻의 굳은 얼굴로 움직이지 않자 위쉐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막 뒤돌아서려는 서대문구 위쉐의 손을 람찻이 붙잡아 세웠다. “위쉐. 이번 일로 다음 가주로 자네가 지목될지도 몰라.” “집안 늙은이들이 반대할 걸?” “발목 잡히는 건 싫은가?” “싫지. 그러니 내 이러고 살고 있지.” “잘 어울릴 것 같은데 한 번 해 보는 건 어떻나?” “그대가 그런 말을 한다면 고려해 보지.” 위쉐는 수려한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명석함은 물론이고 계략을 따지자면 천하에 위쉐를 따라올 사람이 없을 거라고 람찻은 생각하고 있었다. 몸이 약해 멀리 나가지는 못해도 앉은 자리에서 천리를 내다볼 수 있는 그였다. 본인은 별 내키지 않아 하지만 맡은 일은 철두철미하게 처리하는 성격이니 그가 가주가 된다면 사레인 가는 분명 번창하리라. 하지만 위쉐가 가주가 된다면 그의 얼마 남지 않은 수명을 갉아먹을 게 뻔했다. 가주가 되어 보라 했지만 실상은 막고 싶었다.